모두의 뇌 속에 있는 분노와 폭력성


2016년 11월 5일

신형철 교수



우리는 어려서부터 남에게 화내지 말고 피해를 주면 안 된다고 늘 교육을 받아왔다. 그러나 성질 죽이고 살기가 누워서 죽 먹듯이 쉬운 일은 아니다. 살다가 보면 자신도 모르게 남에게 피해를 주게 되고 욕을 먹기도 한다. 한편으론 “세상에 저런 나쁜 놈이 있나”하고 남에게 삿대질을 하기도 한다. 나아가서 저 놈을 죽이고 싶다는 증오의 불길에 휩싸이기도 한다.

우리는 생명체로서 두 가지 본능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개체생존, 둘째는 종족번식의 본능이다. 단세포 미생물에서부터 다세포들로 조직화한 동식물에 이르기까지 생명체는 개체와 전체의 이중적인 생존본능을 가지고 있다. 혼자가 아닌 집단으로서 생존이 유리한 종들만 살아 남았다.

생물은 외부 환경으로부터 영양분을 가져오지 못하면 개체 및 집단의 생존이 불가능하다. 식물은 빛 에너지를 이용해 흡수한 이산화탄소와 수분을 유기물로 변환시켜 생존한다. 동물은 식물 또는 타 동물들을 영양분으로 섭취한다. 식물들은 외면상 인간에게 평화스럽게 보이지만 실상 살아남기 위해 수많은 미생물, 곤충 및 타 식물들과 생화학적인 전쟁을 밤낮으로 하고 있다.

인간을 포함한 동물에게선 약육강식, 정글의 법칙이 엄격히 적용된다. 적을 피하고 먹이를 잡는 행동은 뇌의 편도체와 시상을 중심한 공포, 식욕, 성욕, 쾌락 등 본능과 정서를 관리하는, 유전적으로 오래된 뇌 회로 영역들에 의해서 조절된다. 쥐, 개, 돼지, 호랑이, 사자 같은 금수와 인간이 별반 다를 바 없다는 말이다. 포유류 전체에서 동종간의 살육은 평균 0.3%에 불과하지만 영장류와 인간에선 그 비율이 2.3% 정도로 매우 높아진다. 이것은 격렬한 영역다툼과 집단생활 속에서의 생존경쟁 때문이다.

당연히 수컷이 더 폭력적이고 살육적이다. 한 집단 안에서는 서로 협동적이고 이타적이지만 영역을 침범당하거나 확장 시엔 타 집단들이 몰살되기도 한다. 집단 내의 협동성은 사회적인 뇌인 대뇌 전전두엽이 폭력적인 뇌의 활동을 억제하고 정서적 융합과 공동체 유지와 성장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유지된다.

지구상 가장 폭력적인 동물은 사자도, 오랑우탄도 아닌 바로 나 자신과 주위 사람들이다. 인류역사를 통해 우리는 개인, 가정, 사회, 국가 및 세계로 단위를 넓혀갈수록 인간의 폭력성이 증폭되고 거대화됨을 잘 알고 있다. 폭력성을 정당화하는 명분은 더 큰 사회조직의 생명을 유지하고 성장시키기 위함으로 나타난다. 하위 사회단위 조직 내의 개별적 폭력성은 윤리규범, 관습, 제도, 법 등에 의해 억제돼 왔다. 사회적 규범을 어기게 되면 비윤리적 인간, 범죄자 또는 범죄조직으로 전락해 사회 내에서 격리된다. 우리들의 생존에 필수적인 신체, 배우자, 가족, 상하, 관계유지, 질서, 종족, 환경, 자원 등 9가지에 대한 위협들은 공격적 분노의 뇌 회로를 활성화 시키고 전전두엽의 사회적 뇌 영역들을 억제시켜 폭력적 언어표현과 행동들이 즉각적으로 자기도 모르게 나타날 수 있게 한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폭력적인 뇌의 노예라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인간은 유년시절부터 장기간 교육을 받으며 미성숙한 뇌 회로를 성숙시켜 나간다. 전전두엽은 사춘기를 지나면서 마지막으로 성장이 완성되는 뇌 영역으로서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사회적인 뇌다. 그러나 전전두엽은 이마 뒤에 위치해 있어 살면서 가장 많이 다치는 부분 중에 하나이며, 나이가 들면서 가장 먼저 노화되는 뇌 영역이기도 하다.

이마 뒤의 전전두엽이 잘 자라게 하려면 유년시절부터 20대 초까지 욕심을 버리고 사랑, 배려, 모험, 유머, 그리고 용서를 실천하도록 교육시켜야 한다. 어른이 된 후 인성의 변화는 뇌의 유연성이 낮기에 꾸준히 자발적 수련이나 외부적 충격을 필요로 한다. 평온히 숨을 쉬듯 욕심을 버리고 살자.